택배점주 유족 집하점에... 가해노조원 “물량 뺏지마” 단식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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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0.13. 오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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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래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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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권 위협받는다”며 단식 농성까지 시작
1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조의 기자회견에서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노조원 한모씨(사진 가운데 모자쓴 이)가 "생존권 위협에 그대로 있을 수 없다"며 단식 농성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40)씨의 유족이 생계유지를 위해 새로 택배 대리점을 냈는데, 가해자로 지목된 노조원들이 ‘우리 수입이 줄어드니 물량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반발해 논란이 예상된다. 노조원들은 현재 유족들로부터 경찰에 고소당한 상태지만, 한 노조원은 이날 무기한 단식 농성도 시작했다.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1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CJ대한통운이 고인의 부인에게 집화 대리점을 내줬고, 기존 대리점과 거래하던 집화처를 11월 1일부로 모두 이관시키는 조치를 취했다”며 “이로 인해 기존 대리점의 택배노동자들은 집화처를 강제로 빼앗기고 생존권 위협에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집화처란 택배사에 물건 배송을 대량으로 의뢰하는 고정 거래처로, 대개 인터넷 쇼핑몰이나 소상공인인 경우가 많다. 택배 대리점은 각 가정에 택배를 최종 배달하기도 하지만, 이런 집화처로부터 택배로 보낼 물건을 모아오는 역할도 한다. 보통 대리점 소장이 영업을 통해 집화처를 확보하고, 택배기사들은 택배 물건을 수거해 터미널로 가져오며 소장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숨진 이씨가 운영하던 김포의 A대리점도 이런 고정 집화 업무를 처리했다.

이씨가 운영했던 A대리점은 현재 두 개의 대리점으로 쪼개져 새로 온 소장들이 각각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씨의 부인이 일반 배송 없이 집화만 전문으로 하는 대리점을 새로 냈고, 이씨가 관리했던 A대리점의 집화처 물량을 가져오기로 했다고 한다. 비노조원 택배기사 상당수는 이씨 부인이 새로 낸 대리점으로 소속을 옮겨 이 집화 업무를 할 계획이다.

택배노조와 조합원들은 “일방적인 집화처 강탈과 생존권 위협”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원청(CJ대한통운)이 직영으로 가지고 있는 집화 물량을 유족에게 주면 되지, 굳이 이씨가 가지고 있던 물량을 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조합원 한모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조에 대한) 여론몰이도 억울한 데 생존권 위협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밝히며 무기한 단식 농성을 시작한다고도 했다. 앞서 노조원들은 이씨가 숨진 직후인 지난 8월 말에도 이씨의 집화처들에게 ‘이제 우리와 거래합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집하 물량 제로인 노조원이 단식 투쟁

하지만 택배노조와 조합원들 주장이 무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어느 택배사, 어느 대리점에 물건 발송을 맡길지는 전적으로 집화처의 선택이고, 계약 당사자도 집화처와 숨진 이씨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물량 자체를 숨진 이씨가 영업해서 가져온 것이고, 집화처 상당수는 이미 유족에게 기존 물량을 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한 집화처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이씨와 수년 동안 거래했고, 물량을 유족에게 주면 줬지 노조원들에게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숨진 이씨와 가까운 지인은 “사실상 집화처가 유산이나 마찬가지인데 노조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생계 위협에 처했고, 일부 노동자는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택배노조 주장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택배노조가 지난 9월 2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해당 대리점에 속한 노조원 11명의 총수입은 7733만원(1인당 평균 703만원)이었다. 이 중 87.3%인 6750만원은 일반 배송에서 나왔고, 집화에서 나온 수입은 12.7%(983만원·1인 평균 89만원)에 그쳤다.

이날부터 단식에 돌입한 노조원 한모씨의 경우 지난 7월 총 795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 중 96.3%(765만원)는 배송에서 나왔다. 나머지 3.7%(29만원)는 반품이나 편의점 물량 등이었다. 집화 물량이 전혀 없어 손해볼 일이 없는 노조원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단식 농성에 나선 것이다.

폭언해놓고 “울분 표출된 것뿐”

한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을 ‘세 아이의 엄마’로 소개하며 “지금이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단톡방에서 심한 말을 한 것은 있지만 (이씨가) 노조를 무시하는 데에 대한 울분이 몇 마디로 표출됐을 뿐”이라고 했다. 이어 “물량이 폭증해 죽을 듯이 일했던 코로나 기간 동안 (이씨가) 얼음물 한 번 사준 적 없다”며 “국민여러분, 저의 투쟁을 지지해주십쇼”라고 했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채팅방 대화록에서 한씨는 숨진 이씨를 “슈퍼 왕모기” “농약 먹은 미꾸리(미꾸라지)” “쥐새끼” 등에 빗대어 표현했다. 또 “아무것도 안 하는데 수수료 가져가지 말라” “가짜로 숨 쉬다가 사망하셔서 대답 못하시는 거 아니냐” 등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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